■ 통통의 역사 : 산전수전(山戰水戰) 그리고 고진감래(苦盡甘來)
이 말만으로 보면 통통은 꽤나 안정된 일명 선진국(잘 되고 있다는 조합을 일컬어 우리는 이렇게 불러요)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해요. 왜냐구요? 그야말로 산전수전 그 자체였거든요.
잘 나가는 조합 그러나
처음 2년은 지역사회와 연계가 가능할 만큼 꽤나 잘 나가는 조합이었대요. 하지만 IMF를 비껴갈 수는 없었죠. 상계동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유독 IMF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아요. 하여간 조합원은 한둘씩 탈퇴를 했고 또 새로 들어오는 조합원은 없고, 교사들도 모두 사퇴하고. 덩그러니 네다섯 가구가 남아 새로 채용한 초보교사 한 명과 함께 ‘살아남자’는 일념으로 그 시련을 버텨야 했대요. 탈퇴조합원의 출자금과 교사들 퇴직금을 주기 위해 조합원이 터전으로 이사를 오고 자신의 전세금을 터전에 빌려주면서 그렇게 버텼다는군요.
제 2의 개원에서 비상대책위까지
드디어 2000년! 통통은 제 2의 개원을 하게 되죠. 그런데..... 급한 마음에 아무 원칙이나 절차도 없이 그야말로 ‘와 주신다면 감사하죠’라는 식으로 신입조합원을 받았지 뭡니까. 저 역시 그 당시에 아주 쉽게(?) 조합원이 될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공동육아에 대한 생각이 천차만별, 각양각색. 심지어 고급보육시설로 알고 온 사람도 있었으니.... 눈치채셨죠? 또 문제가 발생한 거. 생각을 나누고 맞추고 해도 어려운 게 공동육아인데 오죽했겠어요. 처음 발단은 교사회와 이사회가 의견이 맞지 않는 문제였는데 나중에는 별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끄집어 나오면서 유치한 감정싸움이 되었죠. 그 감정싸움은 일반조합원(엄격히 말해서 신입조합원)에게까지 번져서 이사회 편이네 교사회 편이네 하면서....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살벌하고 절박했다고요. 하여간 그 싸움의 끝은 황량했죠. 이사장을 비롯한 많은 중견 조합원이 탈퇴를 했고 대부분의 신입조합원이 남아 비상대책위를 꾸려야 했으니까요.
제 3의 개원, 시련은 계속되고
2001년 봄! 비상대책위는 새롭게 이사진을 꾸렸고 과거의 시련을 교훈 삼아 공동육아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고 정관이나 운영규정도 정비했죠. 그렇게 제 3의 개원을 했답니다. 처음 두 달은 정말 좋았죠. 소식지도 나오고 야유회도 다녀오고 대청소도 하고.... 그런데 상상도 못했던 일이 생긴 거예요. 주인이 집을 팔았지 뭡니까. (주인이 조합원이었는데도...) 터전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사람 진을 빼는 일인지... 그 때 같이 터전을 구했던 조합원들은 아직도 그 때를 회고하며 무슨 무용담처럼 얘기할 정도로 그렇게 힘겨운 일이었답니다.
누구는 재정, 누구는 공간, 누구는 거리, 누구는 주변 환경.... 저마다 중요하게 꼽는 바가 다르고 게다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다보니 결론이 나지 않고요. 그 와중에 이사장과 시설이사가 사퇴하게 되고 또 공동육아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뜻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너무 힘들고 지쳐서....
탈퇴의 바람은 또 다시 불어닥치고... 남겨진 십여 가구는 집을 허물겠다는 협박과 마당 수도를 막는 공사를 지켜보며 다급함과 절박함으로 터전을 찾아 나서고....(주인이 건축업자에게 집을 팔았거든요.)
제 4의 개원 - 집을 사다
전화위복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통통은 서울에서 처음으로 터전을 매입했어요. 비록 은행에 융자가 있고 또 조합원과 교사로부터 몇 천만 원을 융자했지만... 새 터전에서의 새로운 출발은 의미가 깊죠. 터전을 샀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 그렇게 맘껏 뻐기며 통통은 2001년 무더운 여름에 제 4의 개원을 했던 것입니다. 설장고로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말이죠.
다시 짐을 싸다
그렇게 기쁘게 지내온 터전이었지만 생활하다 보니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라 여러 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고, 터전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조만간 대대적인 공사현장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 그리고 좀더 먼 안목에서 공공동체를 꾸리고자 하는 욕구 등으로 인하여 다시 이전을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긴급 임시총회를 수차례 열고 거의 다 계약하게 된 건물을 여러 차례 놓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터전을 매입하여 이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 터전도 대대적인 리모델리을 해야 할 형편이라 한 달 가까이를 임시터전 (보람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좁은 아파트에서의 피난생활
한 달간 있을 곳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겨우 보람아파트 스무평 남짓의 아파트를 구해 눈물겨운 피난생활(?)을 하게 됩니다. 1층이 아니어서 아랫층 할머니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고, 이웃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여기저기 마실도 많이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특히 교사회의 노고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지요.
드디어 새터전으로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고 들어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예기치 않은 폭탄이 많이 터졌어요. 장애인 시설을 충족하기 위해 각종 시설을 설치하고, 이웃들의 민원에 따라 한 쪽 유리창을 모두 강화유리로 폐쇄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조흥한신과의 사이에 나무 담장도 설치하구요. 너무너무 힘든 과정을 정말 조합원들의 힘으로 넘어왔어요. 특히 개미, 멸치, 거북이를 비롯한 일부 조합원 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루어내기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도약을 꿈꾸다
통통은 97년에 생겼다지만 사실은 새로 개원한 지 1년 된 신생조합이나 마찬가지예요. 새터전으로 옮긴 지 반년이 안 된데다가 1,2년차 조합원의 수가 많으니까요 .얼핏 보기에 안정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늘 모든 조합원들의 관심과 열정을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이미 완성된 곳이 아닌 내가 들어가 완성시키는 곳, 공부하고 함께 통통을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면, 아주 희망적이지 않나요?